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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21절) (2026-1-13 화/ 창세기 9:18-29)
Author
Joonwoo Lee
Date
2026-01-22 06:09
Views
204
e-QT 실수 (21절) (2026-1-13 화/ 창세기 9:18-29)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실수를 통하여 배우고 성장합니다.
실수는 그 자체보다 후속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고 범죄합니다.
이것이 죄성을 가진 인간의 한계입니다.
실수와 범죄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0-21)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포도나무는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포도를 수확할 때에 온 가족이 기뻐했습니다.
포도열매를 먹고 그것으로 포도주를 만들었습니다.
포도주는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즐거움이 지나치면 실수가 됩니다.
경건한 노아가 포도주를 먹고 실수했습니다.
벌거벗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2)
노아의 실수가 큰 문제가 된 것은
실수를 대하는 함의 잘못된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함은 노아의 모습을 보고 경멸하며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가지고 뒷걸음쳐서
아버지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가리웠습니다.
함이 아버지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본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이 의도한 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후의 반응이었습니다.
함은 실수한 아버지를 경멸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입니다.
홍수 심판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도 실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실수한 사람을 보는 반응이 각기 다릅니다.
경멸하며 조롱할 수 있습니다.
실수를 감싸며 그를 도울 수 있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실수를 보고 경멸했습니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실수를 덮어주었습니다.
감싸 안았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을
함이 들추어내고 경멸하므로 큰 사건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수치스럽게 했습니다.
함은 솔직하게 말했다고 할 것입니다.
솔직한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려하는 말입니다.
함이 솔직하다는 말에는 이미 자신의 의견과 감정이 들어있습니다.
솔직하다는 말은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일 때가 많습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섬기는 말이 더 중요합니다.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5)
함의 잘못된 반응은 혹독한 대가를 치루었습니다.
아버지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배려하고 감싸주었던 셈과 야벳은 축복받았습니다.
이것을 노아의 감정적인 반응으로 치부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이 노아의 축복과 저주를 기록했고 이대로 시행되었습니다.
아들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로 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실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에 둘 중에 하나의 반응을 하게 됩니다.
들추어내고 경멸하면 실수는 커집니다.
감싸 안고 배려하면 실수는 작아집니다.
이것은 죄에 대해 묵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의 실수에 대한 나의 처리 방법입니다.
실수를 들추어내면 상대는 변명하고 숨기려고 합니다.
배려하고 감싸면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려는 시도를 합니다.
실수는 위기의 순간입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 두 단어로 구성됩니다.
실수의 때에 위험으로 빠져들 수도 있고,
회복과 치유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실수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실수의 때에 잘 반응하고 수습해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됩니다.
실수를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다면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실수한 사람을 배려하고 격려하면 한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오늘 실수 속에서도 살리고 세우는 날이 되기 바랍니다.
실수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며…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실수를 통하여 배우고 성장합니다.
실수는 그 자체보다 후속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고 범죄합니다.
이것이 죄성을 가진 인간의 한계입니다.
실수와 범죄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0-21)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포도나무는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포도를 수확할 때에 온 가족이 기뻐했습니다.
포도열매를 먹고 그것으로 포도주를 만들었습니다.
포도주는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즐거움이 지나치면 실수가 됩니다.
경건한 노아가 포도주를 먹고 실수했습니다.
벌거벗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2)
노아의 실수가 큰 문제가 된 것은
실수를 대하는 함의 잘못된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함은 노아의 모습을 보고 경멸하며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가지고 뒷걸음쳐서
아버지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가리웠습니다.
함이 아버지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본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이 의도한 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후의 반응이었습니다.
함은 실수한 아버지를 경멸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입니다.
홍수 심판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도 실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실수한 사람을 보는 반응이 각기 다릅니다.
경멸하며 조롱할 수 있습니다.
실수를 감싸며 그를 도울 수 있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실수를 보고 경멸했습니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실수를 덮어주었습니다.
감싸 안았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을
함이 들추어내고 경멸하므로 큰 사건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수치스럽게 했습니다.
함은 솔직하게 말했다고 할 것입니다.
솔직한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려하는 말입니다.
함이 솔직하다는 말에는 이미 자신의 의견과 감정이 들어있습니다.
솔직하다는 말은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일 때가 많습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섬기는 말이 더 중요합니다.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5)
함의 잘못된 반응은 혹독한 대가를 치루었습니다.
아버지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배려하고 감싸주었던 셈과 야벳은 축복받았습니다.
이것을 노아의 감정적인 반응으로 치부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이 노아의 축복과 저주를 기록했고 이대로 시행되었습니다.
아들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로 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실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에 둘 중에 하나의 반응을 하게 됩니다.
들추어내고 경멸하면 실수는 커집니다.
감싸 안고 배려하면 실수는 작아집니다.
이것은 죄에 대해 묵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의 실수에 대한 나의 처리 방법입니다.
실수를 들추어내면 상대는 변명하고 숨기려고 합니다.
배려하고 감싸면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려는 시도를 합니다.
실수는 위기의 순간입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 두 단어로 구성됩니다.
실수의 때에 위험으로 빠져들 수도 있고,
회복과 치유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실수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실수의 때에 잘 반응하고 수습해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됩니다.
실수를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다면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실수한 사람을 배려하고 격려하면 한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오늘 실수 속에서도 살리고 세우는 날이 되기 바랍니다.
실수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