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 공지]상대를 불쾌하게하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합니다
다툼 (1절) (2026-6-9 화/ 고전 6:1-11)
Author
Joonwoo Lee
Date
2026-06-10 23:06
Views
145
다툼 (1절) (2026-6-9 화/ 고전 6:1-11)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일하는 방식이 다르고
추구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전은 다투는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옳고 그름을 주장하여 따지며 싸우는 것”
다투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의견을 나눌 때에 욕심이 들어가면 다툼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다투게 되면 감정적으로 변하게 되고,
싸우면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1)
고린도 교회에 다툼이 생겼습니다.
다툼은 교회 내의 음행의 문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계모와 음행을 한 사람은 죄를 범한 것이 명백합니다.
그런데 일부가 명백한 악을 감싸면서 다툼이 생겼습니다.
악을 감싼 것은 같은 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고질적인 파당이
교회의 중요한 사건을 처리하는데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은 교회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으로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칙이 없어서가 아니라,
교회의 원칙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교회는 높은 도덕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세상의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천사를 비롯한 영적 세계까지 판단합니다. (3)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해 줍니다. (3)
교회가 이런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편애하고 두둔함으로 인해,
자신의 욕심 때문에 오히려 세상에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욕심으로 파당으로 인해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존귀함이 상실되었습니다.
세상에 판단을 받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존귀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함께 신앙 생활하는 성도를 존귀한 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의 말을 신뢰하고 믿어주어야 합니다.
"너희가 ...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7)
속기로 작정하고 상대를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말씀입니다.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다 교회의 권위가 실추하게 됩니다.
개인이 손해를 보더라도 교회의 존귀함은 잃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다투면서 마음이 상하면 교회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손해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양보하려는 생각을 하다 가도
상대의 말을 듣는 순간 감정이 올라와 원위치가 됩니다.
존귀함에 대한 열망보다는 억울함만 남습니다.
이런 억울한 상황을 감수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가 핏줄이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참습니다.
자녀의 앞날을 위하여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존귀해질 수만 있다면 부모는 모든 것을 참아냅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입니다.
죄로 인해 우리가 비참한 자리에 들어갔을 때,
자녀의 존귀함을 위해 오래 기다리셨고,
결국은 당신의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의 존귀함을 위해 이렇게까지 했단다.
이제는 네가 내 몸된 교회의 존귀함을 유지하라"
그럼에도 주님의 말씀보다는 내 감정이 나옴을 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머뭇거렸습니다.
주님과 주님 교회의 존귀함을 위해 양보하기 원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동기입니다.
내 욕심,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으면 다툼으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존귀하게 세우려는 동기가 있다면 좋은 의견 교환이 됩니다.
오늘 상대를 존귀하게 만드는 날이 되기 원합니다.
주의 교회와 성도의 존귀함을 위해 내가 한발 물러서며…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일하는 방식이 다르고
추구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전은 다투는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옳고 그름을 주장하여 따지며 싸우는 것”
다투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의견을 나눌 때에 욕심이 들어가면 다툼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다투게 되면 감정적으로 변하게 되고,
싸우면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1)
고린도 교회에 다툼이 생겼습니다.
다툼은 교회 내의 음행의 문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계모와 음행을 한 사람은 죄를 범한 것이 명백합니다.
그런데 일부가 명백한 악을 감싸면서 다툼이 생겼습니다.
악을 감싼 것은 같은 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고질적인 파당이
교회의 중요한 사건을 처리하는데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은 교회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으로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칙이 없어서가 아니라,
교회의 원칙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교회는 높은 도덕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세상의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천사를 비롯한 영적 세계까지 판단합니다. (3)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해 줍니다. (3)
교회가 이런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편애하고 두둔함으로 인해,
자신의 욕심 때문에 오히려 세상에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욕심으로 파당으로 인해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존귀함이 상실되었습니다.
세상에 판단을 받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존귀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함께 신앙 생활하는 성도를 존귀한 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의 말을 신뢰하고 믿어주어야 합니다.
"너희가 ...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7)
속기로 작정하고 상대를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말씀입니다.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다 교회의 권위가 실추하게 됩니다.
개인이 손해를 보더라도 교회의 존귀함은 잃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다투면서 마음이 상하면 교회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손해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양보하려는 생각을 하다 가도
상대의 말을 듣는 순간 감정이 올라와 원위치가 됩니다.
존귀함에 대한 열망보다는 억울함만 남습니다.
이런 억울한 상황을 감수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가 핏줄이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참습니다.
자녀의 앞날을 위하여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존귀해질 수만 있다면 부모는 모든 것을 참아냅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입니다.
죄로 인해 우리가 비참한 자리에 들어갔을 때,
자녀의 존귀함을 위해 오래 기다리셨고,
결국은 당신의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의 존귀함을 위해 이렇게까지 했단다.
이제는 네가 내 몸된 교회의 존귀함을 유지하라"
그럼에도 주님의 말씀보다는 내 감정이 나옴을 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머뭇거렸습니다.
주님과 주님 교회의 존귀함을 위해 양보하기 원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동기입니다.
내 욕심,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으면 다툼으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존귀하게 세우려는 동기가 있다면 좋은 의견 교환이 됩니다.
오늘 상대를 존귀하게 만드는 날이 되기 원합니다.
주의 교회와 성도의 존귀함을 위해 내가 한발 물러서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