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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주장 (16절) (2023-2-15 수/ 마태복음 11:11-19)
Author
Joonwoo Lee
Date
2023-03-01 15:48
Views
20
현대인들은 자기주장이 분명합니다.
내 주장과 상대 주장의 전쟁터에서 삽니다.
내 주장이 이겨야 살아남습니다.
내 주장이 밀리는 순간 도태됩니다.
이런 삶의 현장이 나를 변화시켜 갔습니다.
이제는 일상의 삶에서도 자기주장을 합니다.
내 주장대로 사람들이 움직여지면 존재감을 확인합니다.
이 맛에 절대 자기주장을 거둬들이지 못합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6-17)
장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결혼식 놀이를 하자며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에게 배역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혼인 잔치의 흥을 돋구는 무희의 역할을 하는 아이가
그 배역이 싫다면 결혼식 놀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놀이를 주장하는 아이가 거부하는 아이에게
면박을 주며 왕따 시켜 버렸습니다.
다음 날은 장례식 놀이를 했습니다.
놀이를 주장하는 아이가 또 배역을 맡깁니다.
상주, 손님, 시체, 그러면서 한 아이에게는
곡을 할 때 슬퍼 가슴을 치며 우는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그 역을 맡은 아이가 싫다고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놀이를 주장하는 아이가 또 면박을 주고 왕따 시켰습니다.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옳음과 잘못의 결정은
주장하는 아이의 생각과 그가 하는 말입니다.
자기 주장대로 따라주는 아이는 좋은 친구이고,
거부하는 아이는 나쁜 친구입니다.
진리가 아닌 자기가 선악의 기준입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18-19)
예수님이 사셨던 당시에도 그러합니다.
자기가 기준에 되어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세대의 사람인 바리새인입니다.
세례 요한이 와서 금식을 하면서 사역했습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들과 다르게 사역하는
요한을 향해서 바리새인들은 귀신들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세리와 죄인들을 만나 먹고 마시며 사역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께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며 면박을 주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준은 먹고 마심이 아닙니다.
진리도 아닙니다.
자신이 기준입니다.
자기를 따르는 사람은 옳은 사람이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잘못된 사람입니다.
성경은 자기주장을 죄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마 16:24)
자신을 낮추고 순복할 때 높이신다고 하십니다. (약 4:10)
진리의 말씀에 입각한 주장만이 정당한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하는 자기주장은 죄입니다.
자기주장은 남을 해치고 파괴시키는 악입니다.
그 세대의 바리새인과 대제사장, 종교 지도자들의 자기주장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자신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세대는 악한 세대였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세대가 복된 세대입니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세대가 소망이 있습니다.
나를 낮추며 상대를 높이는 곳에 천국이 임합니다.
내가 행한 일이 내 지혜를 보여줍니다. (19)
내가 말하는 것이 나의 지혜를 증거합니다.
오늘 자기주장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기 원합니다.
내 말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원합니다.
내 지혜의 복된 모습을 나타내기 원합니다.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천국을 보기 원합니다.
세상은 자기 주장을 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낮은 곳에서 섬기는 자가 큰 자라로 하십니다.
오늘 나의 주장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원합니다.
자기주장에서 한 발 물러서며…
내 주장과 상대 주장의 전쟁터에서 삽니다.
내 주장이 이겨야 살아남습니다.
내 주장이 밀리는 순간 도태됩니다.
이런 삶의 현장이 나를 변화시켜 갔습니다.
이제는 일상의 삶에서도 자기주장을 합니다.
내 주장대로 사람들이 움직여지면 존재감을 확인합니다.
이 맛에 절대 자기주장을 거둬들이지 못합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6-17)
장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결혼식 놀이를 하자며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에게 배역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혼인 잔치의 흥을 돋구는 무희의 역할을 하는 아이가
그 배역이 싫다면 결혼식 놀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놀이를 주장하는 아이가 거부하는 아이에게
면박을 주며 왕따 시켜 버렸습니다.
다음 날은 장례식 놀이를 했습니다.
놀이를 주장하는 아이가 또 배역을 맡깁니다.
상주, 손님, 시체, 그러면서 한 아이에게는
곡을 할 때 슬퍼 가슴을 치며 우는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그 역을 맡은 아이가 싫다고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놀이를 주장하는 아이가 또 면박을 주고 왕따 시켰습니다.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옳음과 잘못의 결정은
주장하는 아이의 생각과 그가 하는 말입니다.
자기 주장대로 따라주는 아이는 좋은 친구이고,
거부하는 아이는 나쁜 친구입니다.
진리가 아닌 자기가 선악의 기준입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18-19)
예수님이 사셨던 당시에도 그러합니다.
자기가 기준에 되어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세대의 사람인 바리새인입니다.
세례 요한이 와서 금식을 하면서 사역했습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들과 다르게 사역하는
요한을 향해서 바리새인들은 귀신들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세리와 죄인들을 만나 먹고 마시며 사역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께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며 면박을 주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준은 먹고 마심이 아닙니다.
진리도 아닙니다.
자신이 기준입니다.
자기를 따르는 사람은 옳은 사람이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잘못된 사람입니다.
성경은 자기주장을 죄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마 16:24)
자신을 낮추고 순복할 때 높이신다고 하십니다. (약 4:10)
진리의 말씀에 입각한 주장만이 정당한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하는 자기주장은 죄입니다.
자기주장은 남을 해치고 파괴시키는 악입니다.
그 세대의 바리새인과 대제사장, 종교 지도자들의 자기주장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자신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세대는 악한 세대였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세대가 복된 세대입니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세대가 소망이 있습니다.
나를 낮추며 상대를 높이는 곳에 천국이 임합니다.
내가 행한 일이 내 지혜를 보여줍니다. (19)
내가 말하는 것이 나의 지혜를 증거합니다.
오늘 자기주장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기 원합니다.
내 말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원합니다.
내 지혜의 복된 모습을 나타내기 원합니다.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천국을 보기 원합니다.
세상은 자기 주장을 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낮은 곳에서 섬기는 자가 큰 자라로 하십니다.
오늘 나의 주장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원합니다.
자기주장에서 한 발 물러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