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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와 숫자 사이에서 (17절) (2023-4-5 수/ 마태복음 27:11-26)

Author
Joonwoo Lee
Date
2023-04-12 01:59
Views
138
민주주의는 숫자의 싸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투표수가 많은 사람이 승리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 모을 방법을 생각합니다.
여론몰이를 통해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바른 것보다는 머리 수를 모으는데 더 관심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하면 무난합니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의 말이 진실은 아닙니다.
숫자가 진실에 영향을 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숫자가 정의를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5)

빌라도 총독은 무리가 원하는대로 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무리가 원하는 대로 억울한 죄수를 풀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무리의 소원이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가 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시기로 예수가 잡혀온 것을 알았습니다.
빌라도의 아내도 예수는 옳은 사람이기에
예수의 처벌에 상관하지 말라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무리의 적극적인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무리는 빌라도를 협박하며 압박했습니다.
결국 죄수 바라바는 풀어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내어주었습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7)

빌라도는 재판관으로 균형을 잃었습니다.
정확한 법 적용으로 판결하지 않았습니다.
여론에 굴복하여 판결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는 죄가 없다고 스스로 한 말도 뒤집었습니다.

숫자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무리는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폭동을 일으킵니다.
많은 경우 민주주의는 데모와 함께 갑니다.
힘 과시를 통해 무리의 뜻을 관철시키고,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합니다.

빌라도는 무리가 민란을 일으킬까 두려워서
정의보다는 무리가 원하는 것을 따라 갔습니다.
사실 무리의 뒤에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무리를 권하여 예수님을 멸하자고 조종했습니다. (20)
종교 지도자들은 무리의 힘을 통해 빌라도를 컨트롤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입니다.
진리는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물론 민주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그런데 민주적인 것과 민주주의는 다릅니다.

무리의 뜻을 따른 빌리도는 자신이 손을 뺐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죽인 주범이 되었습니다.
여론과 숫자를 따라 불의한 결정을 했습니다.

결정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결정을 하는데 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결정을 하면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진리대로 정의롭게 판결해야 합니다.

오늘 바른 결정을 하라고 하십니다.
숫자와 여론을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 가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가는 대로가 아니라 진리와 진실을 따라 가라고 합니다.

많은 숫자를 따라가면 원만하고, 그 숫자가 나를 지켜줍니다.
어떤 경우에도 숫자가 정의를 앞서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많은 숫자도 진리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고 바른 세상이 됩니다.
오늘 숫자가 아닌 바른 것을 따라가는 날이 원합니다.

여전한 숫자의 위협과 미혹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