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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입맞춤 (44절) (2024-3-26 화/ 막 14:43-52)

Author
Joonwoo Lee
Date
2024-03-31 23:21
Views
39
e-QT 죽음의 입맞춤 (44절) (2024-3-26 화/ 막 14:43-52)

입맞춤은 평안을 비는 인사입니다.
당시 랍비에게 입맞춤으로 인사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스승에 대한 존경과 신뢰, 애정의 표시였습니다.

입맞춤은 제자와 스승을 연결시키는
사랑과 존경, 축복의 도구입니다.
이렇게 복된 것이 악인들에게 들어가면서
죽음의 입맞춤으로 바뀌어지게 됩니다.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 (44)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끝까지 기회를 주었으나
유다는 그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예수님을 잡을 기회를 찾았습니다.

드디어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예수님이 홀로 계시는 곳을 생각해냈습니다.
습관을 따라 기도하는 곳에서 체포하면
백성들의 저항없이 조용히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자를 파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14:21)
주님의 염려는 탄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사병들과 함께
예수님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유다는 랍비여 하며 예수님께 입을 맞춥니다.

유다의 입맞춤은 사랑과 존경의 표가 아닙니다.
죽음의 입맞춤입니다.
위선의 입맞춤이고 더러운 욕망의 입맞춤입니다.

사람들은 입맞춤을 통해 사랑과 존경을 표하고,
입맞춤으로 샬롬과 축복을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거룩한 몸짓이 철저히 유린되고 있습니다.
사망의 세력에 의해 짓밟히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0)

예수를 잡으려던 무리가 몰려오자 제자들은 우왕좌왕했습니다.
베드로는 자만의 검을 휘둘러 위험을 자초했고,
다른 제자들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한 청년은 홑이불을 쓰고 끌려가는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발각되어 잡히자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렇게 주의를 주었건만
무리들이 몰려왔을 때에 오합지졸이 되었습니다.
졸면서 준비하지 못한 것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이제 예수님 홀로 남으셨습니다.
제자들의 도망과 배반을 뒤로 한 채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끌려가고 있습니다.

비극은 유다의 입맞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거짓 존경과 거짓 사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공동체를 순식간에 와해시켰습니다.
제자들은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49)

이런 어려움에서 새로운 일이 시작됩니다.
악한 것들도 종종 성경의 예언이 이루는데 사용됩니다.
죽음의 입맞춤으로 모든 것은 최악이 되었지만,
이것을 통해 성경의 예언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망의 세력이 다가옵니다.
존경과 사랑, 신뢰로 가장하여 다가와서
갑자기 돌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이럴 때는 주님도 힘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힘없이 끌려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그 앞에 굴복하고 맙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사망의 세력을 깨뜨리고 부활하십니다.
흩어졌던 제자들을 다시 부르십니다.
그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십니다.

위선과 욕망, 사망의 땅에서도
희망은 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망의 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 말씀은 이루어집니다.
눈을 크게 떠서 말씀대로 이루어 짐을 보기 원합니다.
그 소망을 말하기 원합니다.

모든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지만 성경의 예언은 이루어 집니다.
위험한 상황을 보면서 흔들리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됨을 알기 원합니다.
오늘 위기를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보기 원합니다.

말씀의 씨가 큰 나무가 되어 세상을 덮는 것을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