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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Reedley) 김형순 이야기

Author
Joonwoo Lee
Date
2024-05-12 03:59
Views
24
중가주의 농업 중심도시 프레즈노(Fresno) 인근 리들리는 한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도시입니다. 리들리 시에 가면 독립문이 세워진 “한인 이민역사 기념각”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이승만, 안창호, 윤병구, 이재수, 김종림, 김호, 한시대 김형순, 송철, 김용중 등 애국지사 10인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비석 앞 뒤로는 사진과 함께 연혁, 애국활동을 영문과 한글로 소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외 에도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자취인 교회와 무덤, 이승만 전대통령과 안창호씨가 묵었던 버지스 호텔이 있습니다.

고종의 이민 장려 정책으로 1903년 사탕수수 노동자를 실은 배가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습니다. 수수농장 계약 기간이 끝나자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중가주 농업 지역인 리들리와 다뉴바로 집단 이주를 하였습니다.
이들 중에 김형순 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경남 통영군에서 태어나 미국인 선교사 존스 에게 세례를 받고 영어를 배웠습니다. 존스 선교사의 도움으로 배재학당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공부하고 1901년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김형순은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영어 통역관겸 인솔책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사탕수수농장에서 6년 통역 업무를 하다 사임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통치를 견딜 수 없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1916년 봄 리들리시에 도착 후 김형순은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번 돈으로 묘목상회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과일 육종 전문가 (UC DAVIS 농대교수)의 도움으로 자두와 복숭아를 교배하여 개발한 넥타린 (털없는 복숭아)라는 품종을 개발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복숭아에 털이 있어 알러지를 일으키기에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알러지를 일으키는 이들은 털이 제거된 복숭아를 미국 전역으로 보급했습니다.
김형순이 만든 과일이 미국 전역에 팔리면서 사업은 확대되었고, 김호라는 분을 만나서 동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김형제상회`(Kim Brothers, Inc.,)를 설립하였고, 사업은 더욱 번창하여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사업으로 번 돈 중 많은 부분을 대한민국 독립자금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미국에서 독립 운동으로 보내진 자금이 28만불 이었다고 하는데, 이중에 약 20만불 (현 시가로 1,100억원) 정도가 리들리 시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부분을 김형제상회가 감당했습니다. 당시 이곳에 거주하던 230여명의 한인들은 하루 수고하여 받은 일당 중에 50센트를 독립자금을 위해 떼어 놓았다고 합니다. 리들리 한인들의 헌신은 독립 운동을 하는 분들에게 큰 힘이 되었음이 확실시 됩니다.

초기 하와이에 입국한 한인들은 주로 철새 노동자로 있었지만, 김형제상회에서 일하면서 리들리에 한인 타운이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1938년 리들리 시에 한인교회를 세웠는데, 김형순이 기부한 대지 위에 교회를 건립했습니다. 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묘지에는 170여구의 한인 선조들의 묘가 있습니다.
리들리 김형순의 행적은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2010년 남가주학회 김운화 교수가 통영시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통영시는 조사단을 리들리에 파견하여 확인 후 국가 보훈처에 알렸습니다. 그해 10월 리들리시 10만불, 국가 보훈처 9만불, 통영시 7,500불을 지원해고, 이듬해 2011년에 독립문을 비롯하여 ‘한인 이민역사 기념각’을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삼일절에 한인회를 중심으로 리들리에 가서 기념행사를 진행해 왔다고 합니다. 중가주 해병전우회는 매년 2차례 한인묘지 헌화 봉사를 했다고 합니다. 올해는 105주년 삼일절 행사를 한인회가 중심이 되어 리들리에서 성대하게 치룬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고향을 떠나면 더 고향 생각을 하는 것처럼, 고국을 떠나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생겼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번에는 요세미티를 갈 때 리들리를 거쳐서 간다면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