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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하는 마음
Author
Joonwoo Lee
Date
2025-05-15 01:35
Views
424
배려(配慮)의 한자어를 풀이하면 ‘짝 배, 생각할 여’ 자로 ‘자신의 짝처럼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즉 ‘자신의 반려자처럼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이 배려라고 합니다. 배려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따뜻한 힘이 있습니다. 지동직의 책 <배려의 기술>에서 '배려'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 습관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배려'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라고 합니다. '배려'는 자신과 타인이 서로 발전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과학적 법칙입니다. 배려의 결과는 자신의 행복과 직결되는 차별적 우위 요소라는 것입니다. 배려는 가장 세련된 삶의 기술이고, 세상은 배려하는 사람을 원하고, 배려는 풍성한 화제를 만들어주며, 배려는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 '나'를 높여주고, 사람을 끌어 모으고,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상처를 감싸준다고 말합니다. 배려는 행복한 사람, 성숙된 나로 인격의 옷을 입혀준다고 합니다. 서로 배려할 때 세상은 따뜻한 사회가 됩니다. 선진화된 사회에서 운행하는 버스에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위한 승하차 경사로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것처럼 배려는 사회의 품격을 말해 줍니다.
배려하는 마음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윤리학자인 나딩스(Noddings)는 ‘배려를 하는 사람‘과 ’배려를 받는 사람‘ 사이의 사회적 관계성을 중시하며 4단계로 설명합니다. 1단계는 “대상에 대해 염려하고 관심을 갖는 것”을 배려의 시작입니다. ’누구를 도울까‘,’무엇을 도울까‘와 같은 관심과 관찰이 배려의 첫 단추입니다. 2단계는 배려를 위해 준비하고 책임을 맡는 과정입니다. 3단계는 배려를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4단계 배려를 받는 사람이 배려에 응답하는 과정이 됩니다.
소설가 ‘펄 벅’은 ‘대지’ 라는 작품으로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는 유난히 한국을 사랑해 1965년 한국펄벅재단을 설립해 6·25전쟁 이후 고아들을 돌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우리나라를 그토록 사랑한 것은 한 인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녀가 한국에 처음 와서 여행 중 경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농로(農路)를 걷고 있는데 한 농부가 큰 나무 짐을 지고 수레를 끄는 소를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농부에게 “당신이 지고 가는 짐을 수레에 싣고 타고 가면 편하지 않으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소도 온종일 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그럴 수 없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농부의 배려심에 감탄한 펄 벅은 중국, 일본과 다른 우리의 민족성을 다시 보게 됐었습니다. 약육강식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이런 풍경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승리가 생존의 필수요소가 된 무한 경쟁 시대에 상대에 대한 배려는 사치품에 불과해 보입니다.
부모의 배려를 통해 자라고, 타인의 배려 속에 살아가다, 자식의 배려를 받고 세상을 떠나는 것처럼 배려는 인간 삶의 필수품입니다. 진정한 배려는 내가 해주고 싶은 방식이 아닌 상대가 원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배려는 ‘나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다름이 아니라 차이로 받아들이는 아량이 필요합니다. 목표 지점을 자신의 시선에 집중하지 말고, 상대의 시선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진정한 배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 배려하므로 함께 어울리는 세상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배려하는 마음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윤리학자인 나딩스(Noddings)는 ‘배려를 하는 사람‘과 ’배려를 받는 사람‘ 사이의 사회적 관계성을 중시하며 4단계로 설명합니다. 1단계는 “대상에 대해 염려하고 관심을 갖는 것”을 배려의 시작입니다. ’누구를 도울까‘,’무엇을 도울까‘와 같은 관심과 관찰이 배려의 첫 단추입니다. 2단계는 배려를 위해 준비하고 책임을 맡는 과정입니다. 3단계는 배려를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4단계 배려를 받는 사람이 배려에 응답하는 과정이 됩니다.
소설가 ‘펄 벅’은 ‘대지’ 라는 작품으로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는 유난히 한국을 사랑해 1965년 한국펄벅재단을 설립해 6·25전쟁 이후 고아들을 돌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우리나라를 그토록 사랑한 것은 한 인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녀가 한국에 처음 와서 여행 중 경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농로(農路)를 걷고 있는데 한 농부가 큰 나무 짐을 지고 수레를 끄는 소를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농부에게 “당신이 지고 가는 짐을 수레에 싣고 타고 가면 편하지 않으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소도 온종일 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그럴 수 없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농부의 배려심에 감탄한 펄 벅은 중국, 일본과 다른 우리의 민족성을 다시 보게 됐었습니다. 약육강식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이런 풍경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승리가 생존의 필수요소가 된 무한 경쟁 시대에 상대에 대한 배려는 사치품에 불과해 보입니다.
부모의 배려를 통해 자라고, 타인의 배려 속에 살아가다, 자식의 배려를 받고 세상을 떠나는 것처럼 배려는 인간 삶의 필수품입니다. 진정한 배려는 내가 해주고 싶은 방식이 아닌 상대가 원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배려는 ‘나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다름이 아니라 차이로 받아들이는 아량이 필요합니다. 목표 지점을 자신의 시선에 집중하지 말고, 상대의 시선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진정한 배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 배려하므로 함께 어울리는 세상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